황우석 박사 법정최후진술 전문 | 낙서장 2009.08.24 20:51 시골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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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시각 대서특필되고있는 황우석 박사 구형소식에 관심있어 이 글을 보시게 될 네티즌 여러분, 그리고 기자분들께 우선 말씀드립니다. 검찰의 4년 징역 구형은 검찰이 재판부에 요구한 말 그대로 '검찰쪽의 판단'일 뿐 헌법이 규정한 재판부의 판단이 아닙니다. 황우석 박사 변호인단은 검찰구형항목에 대해 '모두 무죄'를 변론했습니다. 그리고 법의 판단은 오는 10월19일(월) 1심 선고를 통해 내려지게 됩니다. 법조인들에 따르면 검찰과 피고인측의 판단이 유죄/무죄로 극명하게 갈리기에 검찰이 비록 4년구형을 요구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하면 무죄입니다. 검찰구형량은 유죄판단에만 유효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2심,3심으로의 항소는 불가피해보입니다. 7~10년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이 과학자들에게 '연구'로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황우석=사기꾼' 단정짓는 글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모르시는 분이거나 아니면 사심있는 분들이기에 점잖게 타이르시거나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민들끼리 싸울 시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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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증인에 대한 모든 심리가 끝나고 검찰이 일어나 구형문을 낭독했다.
 "이러한 일이 향후에 재발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구형을 합니다. 황우석 징역 4년"
 
 그때 방청석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헛소리마.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
 황우석 박사와 변호인은 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변호인의 마지막 변론이 시작되었다. 모두 무죄를 주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부의 관용을 당부하는 정상참작 요건을 읽어내려갈 때였다. 모든 과오는 줄기세포 수립을 위한 연구에의 열정에서 비롯되었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며 개인사재를 털어 연구에 사용해온 점을 참작해달라는 황우석 변호인(이봉구 변호사)는 마지막 정상참작 항목에서 잠시 낭독을 멈췄다. 울먹이고있었다.
 
 "황우석 피고인은 서울대 교수직 등 모든 것을 잃고 죽음보다 더한 절망속에서도 오로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수립으로 국민에게 진 빚을 속죄하기 위해 법정과 연구실을 오가며 노력하고 있음을 살펴주십쇼." 라는 대목이었다.
 
 잠시 후, 피고인 석에서 일어난 황우석 박사는 최후 진술을 시작했다. 다음은 필자가 방청석에서 속기한 황우석 박사 최후 진술 전문이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동안의 과오를 자숙하는 의미로 최후진술을 사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상 피고인 3분에 대한 구형과 증언을 들으며 (제가) 아무 이야기도 없이 그대로 있다면 너무 비겁한 사람이라는 악평을 들게될까봐 조심스레 최후진술을 합니다.
 
 저는 이 사건 수사가 끝나고 (검찰에 의해) 기소된 뒤 억지로 잠이들었다가도 새벽녁이 될 때 '사기횡령'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나 결국 뜬 눈으로 지새우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20년간 나름대로는 금욕적인 생활과 스스로 정한 생활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남들 다가는 노래방이라는 곳에도 가본 적이 없고, 아침햇살이 환히 비출때까지 잠자리에 누워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생활을 나눠 온 저와 저의 연구팀의 등에 '사기꾼 집단'이라는 낙인을 맞게 되면서부터 극심한 고통과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63일 동안 서울지방 검찰청 1235호실에서 8명의 검사님과 수십명의 수사관들에게 심문을 당할 때, 그 이후 약 3년에 걸친 재판과정을 겪어오면서, '왜 수사 또는 재판 과정에 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해와 동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저의 운명이고 이 세상에서의 수행과 수양과정이자, 제가 그토록 꿈꾸던 과학도로서의 자세에 다가가지 않을까 다름대로 생각해봅니다.
 
 오늘 저 자신에 대한 변명보다 상 피고인들에 대한 저의 소회를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장상식 피고인....제가 오늘 맞고있는 중압감과 고통보다도 장상식 피고인이 법정에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안규리 교수의 소개를 받아 장원장을 뵈었을 때 흔쾌히 (연구용 난자제공을) 도와주겠다는 한 말씀에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난자제공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마치 (꿔준) 빚 받아가듯이 또박또박 받아가던 어느 분과는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2005년 1월까지만 해도 저는 장 원장님이 자발적 난자기증을 해주신 분들께 개인 사재를 털어 어느만큼의 시술비를 감면해주셨는지 몰랐습니다. 2005년 3월에 이르러 (장원장님) 개인의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느냐고 여쭤봤더니 이러저러하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도 (제가) 과배란 주사만이라도 공급해드리겠노라 말씀드렸더니 장원장님은 '됐다'고 거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원장님께서 저에게 '모든 힘을 다할테니 (난자제공이)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요청해오셨습니다. 저는 그 뒤 의사로서 법학을 다시 공부해 법대교수가 된 당시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시던 정규원 교수님을 수차례 만나 법적 자문을 구했습니다. 일주일 뒤 그 분께서 (당시 방식이)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장원장님께 그대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만일 검찰의 구형을 받아들이시어 장상식 원장께 탓하실 것이 있으시다면 (그것을) 저에게 몰아주십시요. (당시) 장상식 원장님의 행위는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을 일이지 범법자 낙인찍힐 일이 아니라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강성근 교수....가슴 아픕니다. 강성근 교수는 원래 저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총장께서 국제연구를 잘하기위해 너의 연구실에 교수를 1명 더 뽑을 수 있는 T.O 를 주겠다고 하셨을때 총장께 저는 저의 제자가 아닌 국제연구를 잘 할 수 있는 훌륭한 전문가를 영입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이병천 교수와 상의해, 이병천 교수의 고등학교 후배인 강성근이 좋겠다고 해서 (당시) 여러 명 대기하던 저의 제자들을 뒤로 하고 강 교수를 신규 교수로 채용했습니다. 강교수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성실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만일 그 때 제가 강교수를 뽑지 않았더라면 강 교수는 (아마) 이 불행한 사태를 접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몇 달전 강교수가 입원해 수술을 받은(강성근 전교수는 사태 이후 위암초기로 판명, 수술받았음) 삼성병원에 (제가) 병문안을 갔을 때 저를 붙잡고 강교수의 부인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저도 23년 전 간암으로 한쪽 간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던지라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이러한 강 교수에게 법의 온정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윤현수 교수...훌륭한 사람입니다.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던 윤 교수를 위해 제가 당시 한양대 의대 학장님과 해부학 교실 주임교수님을 만나 간청했고 그 뒤 윤교수가 임용되었습니다. 만일 윤 교수도 저와의 이런 인연이 없었더라면...그대로 미즈메디 연구소장으로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와 같이 피고인석에 서는) 이런 불행한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 분의 교수...훌륭한 교수들...이 분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선종 박사.....
 제가 매일 아침 5시50분에 연구실에 출근하면 꼭 10분 전에 그것도 1년 365일 김선종 박사가 먼저 출근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김선종 박사처럼 성실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런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실행에 옮겼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고서 (저는) 김 박사를 서울대 의대 교수로 받아주실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만일에...만일에 김 박사가 과거의 일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성실성을 더욱 배가시켜 참회의 여생을 살아가겠다고 한다면...저는 (그를) 제 연구팀에 합류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국민들이 꿈꿨던 그 과학의 열매를 김 박사와 함께 따고 싶습니다.
 
 의례적 인사치례도 아니고, 여기 계신 재판부와 방청석에 호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 2006년 1월12일 서울대를 떠나며 드렸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국민들 앞에 드렸던 대국민 약속....(환자맞춤형 줄기세포의 존재) 그 약속을 지키도록하겠습니다. 그리 머지않은 어느날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을 맞으시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재판장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저의 마지막 열정을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쏟아붓고 싶습니다. 그 꿈이 실현되는 날이 오면, 10대 여중생 민지가 그 추운 겨울날 청와대 앞에서 오돌오돌 떨며 외쳐왔던...그리고 그 추운 겨울철 어느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일면식도 없는 저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선생님의 유가족을 찾아나서고자 합니다. 그 가족들과 민지와 함께 어느 날 이 서울중앙지법 417호를 둘러보는 그 날이 되기를...
 
 이선봉 검사님, 그리고 ***검사님...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어려운 재판을 장기간 끌어오시게 된데 대해 사죄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베푸실 온정이 있다면...저 때문에 불행하게 된 상 피고인들에게 좀더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황우석 박사 법정최후진술(2009.8.24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훌쩍이던 방청석에서는 커다란 박수가 터져나왔다. 법원 관계자들이 이를 제지하려했지만 그 박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법원의 1심 판결 선고는 오는 10월19일이다.

Posted by 도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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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님이 제11회 장영실 국제과학 문학상을 수상 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시골피디저널리즘' 블로그 전문을 아래에 게시 합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으시려면  시골피디님 블로그로! (http://blog.daum.net/pd-diary)

===================================== 내용==========================================
 

 

과학선현 장영실 선생의 뜻을 기리는 2009년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수상자로 황우석이라는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러나 정작 황 박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같은 시간 줄기세포 공판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야했다. 2009년 6월8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의 진풍경이었다.
 
상패(뉴시스).JPG
 
수상명 :
 제11회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기관 :
(사)과학선현 장영실선생기념사업회(명예회장 이수성 전국무총리, 회장 장진철, 조직위원장 이상희 전과학기술부장관)
 
시상식 :
 2009년 6월8일 오후 2시
 서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황우석 박사 대신 수상한 현상환 교수(충북대 수의학과)의 수상소감
 
현상환교수(뉴시스).JPG
 
 
  -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황우석연구팀에서 박사 학위
  - 미국 피츠버그 대학 섀튼 팀에서 박사후연구원
  - 세계 최초 원숭이 복제 배반포 수립
  - 위 성과에 힘입어 미국 피츠버그 대학 연구교수
  - 귀국후 충북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 줄기세포 이용한 치료복제 검증 및
    체세포 핵이식 기술 이용한 질환모델동물 개발
  - 국제 SCI급 논문 26편, 특허 3건, 전문서적 4편
  - 황우석 논란 직후 스승인 황우석 박사연구도와
    현재 수암생명공학연구소 자문교수 겸임.
  - 2007년 '미시' 복제성공 등 최근 동물복제연구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오늘 수상의 영광을 안게되신 황우석 교수님께서 공판기일과 겹쳐 이 자리에 나오시지 못하고 후학을 대표해서 제가 대리수상을 하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줄기세포 사태로 인하여 현재 소송중인 상황임에도 이렇게 큰 상을 내려주신 과학선현 장영실 기념사업회의 용기와 현명한 판단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상은 저희 연구팀에 보내주신 따뜻한 격려, 그리고 모진 질책,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떠한 역경에서도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연구를 절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연구진의 사회적 소명을 다시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님은 줄기세포 사태가 무엇보다 본인의 불찰과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 그리고 관련 학계에 큰 실망을 끼쳐드린데 대하여 사죄하는 심정으로 현재 연구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장영실 선생님의 정신을 본 연구과정에 승화시켜 이 상을 주시는 의미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정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상희 조직위원장(대한변리사회 회장)의 개회사 중 일부
 
이상희회장(미니홈피).JPG
  -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학박사
  - 청조근정 훈장
  - 11대 과학기술부 장관
  - 국가과학자문회의 위원장 역임
  - 11,12,15,16대 국회의원
  - 현재 대한변리사회 회장



 

"오늘 수상자 중에 본상을 받으시는 황우석 박사의 경우는 여러가지 사회적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식산업중에서 우리가 산업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게 뭐냐? 그거 흔하지 않습니다.투포환은 우리 힘이 약해서 안됩니다. 양궁은 우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양궁처럼 집중해서 금메달 딸 수 있는 종목이 뭐냐 찾아보니 몇개가 안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줄기세포입니다.
 
제가 기술특허관계의 변리사회장으로서 작년 연말에 미국 여러주를 다녔습니다. 근데 전 하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들이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어떻게 되나느냐고 가는 곳마다 제게 물었습니다. 그래 제가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이 왜 이 분야를 묻느냐..대개 궁금증을 갖는 이유는 돈벌 가능성이 많고 미래 거대산업이 될 수 있는 그런 부분에 궁금증을 많이 갖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아 줄기세포 분야는 한국이 김연아처럼 아니면 양궁처럼 금메달 딸 가능성이 제일 많은 국가이고 국민이니까 그런 점에 한국이 어떻게 하고있느냐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우리나라 안에는 황우석 사태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이 분야 연구가 솔직히 주춤한 것은 사실입니다. 생명윤리위원회는 그래도 안전하게 가야겠다라는 분위기로 주저하고 있고 또 정부도 보면 이런 분야 확신갖고 하는데에 다소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연구라는 부부은 잘 아시겠지만 많은 시련과 고뇌와 실패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안전빵으로 가는데에서 절대로 큰 대어를 잡지 못합니다.
 
사실 황우석 박사가 한 분명한 역할은 이 줄기세포라는 오바마 대통령 조차도 이 분야를 해야 경제를 살릴 거라고 생각하는 이 분야를 그래도 장영실 선생처럼 제일 먼저 세계에서 문을 열어서 봉화를 든 사람이 그건 분명 우리 황우석 박사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사회 일각의 부정적인 면, 긍정적인 면 양면이 밤과 낮처럼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은 완벽하고 인간은 미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레미제라블에서 읽은 것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은 발전, 성장하는 과정이고 그분이 갖고 있는 기술과 능력은 우리 국가가 활용하고 기대해야할 부분입니다."

◆ 심대평 의원, "제도의 틀에 묶어서 빛을 볼 수 없게 하면 안돼."
 
심대평(블로그).JPG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24대, 32대, 33대, 34대 충청남도 도지사 역임
  - 제17대, 18대 국회의원
  - 자유선진당 대표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 물론 수상자 여러분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꼈던 후배 과학자 황우석 박사가 이 상을 받으시는데 대한 특별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오늘 긴 말씀으로 황박사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발명된 것은 1377년이었습니다. 그 백년뒤에 금속활자를 독일에서 발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아마도 놀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금속활자를 일찍 발명했는데 세계 제일의 문자라고 하는 한글을 금속활자로 찍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정치인들이 없었습니다. 임금도 안 계셨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백성들은 적당히 모르는게 좋다는 그 생각 때문에 금속활자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장영실 선생같은 과학자를 600년전에 우리가 가졌던 것은 큰 행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제대로 과학기술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가장 중요한 생각들이...제도의 틀에 묶여서 빛을 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황 박사가 못나오는 이유는 제도의 틀에 갇혀서 고통받는 공판장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이 장영실 상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과학기술문명 뿐만 아니라 선진한국으로 가는 우리의 문화를 새로 창조하는 그런 계기가 되어서 우리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모쪼록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황우석 박사와 함께 연구하시는 많은 분들이 새로 용기를 가지고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결과를 빨리 만들어내서 그분이 하고자 하셨던 우리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모든 인류에게 병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속속 나와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면서 오늘 이 시상식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 김원웅 전 국회의원, "서울대 조사위원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 뒤따라야"

김원웅전의원(뉴시스).JPG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제17대 국회의원
 -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 의정활동 베스트의원상
 - 민주당
 - 현재 단재 신채호 기념회장






 
 

 

 

 

" 저희들이 회고를 해보면 장영실이란 분이 600년전에 어떻게 사셨을까? 우리 역사에 보면 장영실 선생님의 삶은 그렇게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수구사대세력. 그들이 온갖 모함으로 장영실 선생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영실 선생의 재능을 소중하게 여겼던 세종대왕이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기득권의 질시와 저항으로 장영실 선생의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세종대왕이 나섰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무릎 꿇는다면 나는 인재를 잃을 것이고 우리 후손들은 뛰어난 문명을 잃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장영실을 지켜준 것이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 이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성과에 대해서 질시하는 세력, 기득권층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함이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황박사 줄기세포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서울대 조사위 발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법정에서 이 서울대 조사위 발표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발표로 인해서 입은 국가적 손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렇게 잘못된 발표로 손실된 국가적 명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서울대 조사위 그 구성이 객관적 인선이었나? 그 당시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객관적으로 서울대 조사위를 구성했는가? 그리고 구성된 서울대 조사위가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조사결과를 냈는가? 이런 강한 의문을 갖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은 아주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과학은 몇몇 학자의 연구성과일 뿐만이 아니라 과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과학이 기득권층과 민중의 싸움일 수 있고 과학이 민족자주정신과 사대주의의 싸움일 수 있다. 이런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늘 황우석 박사가 수상한 것을 계기로 해서 지금 우리가 달음박질을 해야되는데, 세계는 미국을 필두로 해서 모든 중요한 나라가 줄기세포 연구에 국운을 걸고 있는데 우리도 다시 신발끈, 운동화끈 다시 매고 달려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황우석 박사 팀의 노력을 다시 기대합니다."


Posted by 도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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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님의 블로그를 얼쩡이다가.....

지난 여름에 감정의 찌꺼기에 부딪혔다....

디워. 진중권.

나도 100분토론을 다 보았고, 상당히 불쾌했다.

다수의 몽매한 군중이 두렵지 않다고 외치는 그는, 기실 약자나, 소수의 의견이 아닐진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다수가 있음을 알았다. 특히, 더 냉소적이고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맞는말인데 왜그러냐고, 태도는 본질이 아니고 그 진실을 보라는....그런 글들...)

그리고, 진중권이 걸고 넘어지는 권력을 쥔 사기꾼 황우석을 얘기 할때, 나는 화가 났다.

당신은 변호사나 하지 그랬어!!!

나는 2006년 2월 그해 겨울에 가장 추웠던 날. 광화문에 있었다.

나는 동네수첩을 봤고, MBC의 PD수첩을 봤으며, 미즈메디의 행태를 보고, 의사협회의 행보를 보았다.

미국의 양면성을 봤으며, 서둘러 덮는 검찰을 보았다.

내가 가장 분개하는 것은

진중권의 3단 논법이다....

*      광적인 열광(우매한 대중의 애국심)
   → 진실을 밝힘 (본인과 같은 소위 소수의 지식인)
   → 무작정 분개, 몰매(역시 우매한 대중들..)....

2006년 2월의 그날에 모인사람들은 광적인 열광을 하다가 사소한(?)사진조작으로 위대한 과학자 황우석을

내칠수 없다는 광신도들이 아니고, 그냥 주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그냥 시끄럽게 떠들길래,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보다가, 어 이건 아닌데? 하면서 하나둘 알게되고 동네수첩을 보고, 여러 상황들과 그 이면들을 보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에 서로 손잡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 다른 얘기 -

박영선 위원 (당시 기자)의 외침은 슬며시 묻혀 버리는가?

"얼굴 똑바로 보기 민망 할 짓"을 인터뷰한 사람만 있고 인터뷰 대상자는 없단 말인지....
Posted by 도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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