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그 암울했던 그때는 '공연윤리위원회'라는 이상한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을 할 때라서 조금만 불손하다고 생각하면 ( 노동자, 억압, 좌익, 음란, 국익에 반하는...) 가차없이
금지곡을 양산키던 우울한 때 였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U2나 프린스의 곡들은 기본이 서너곡씩 금지가 되기 일쑤였고, 어린 맘에 원본을 들으려
청계천 세운상가를 기웃 거렸다.
일명 '백판(빽판)' 이라고 불리우던 외국 원본 LP판을 그대로 복제하여 만든 해적판 LP를 사기 위해서이다.
청계천 상가의 복잡한 다리길을 건너서, '좋은거 있으니 구경하라'는 험상궂은 삐끼들을 서너명 물리치고
찾아간 반그늘 다리밑 리어카에서는, 뭔가 팝송과는 거리가 멀 것같은 멀뚱멀뚱한 아저씨가
신나라 레코드점에서 나눠주는, A4용지에 복사한 빌보드 차트를 걸어놓고 음악 없는 DJ를 하고 있었다.
얼굴과는 달리 차분한 어조로,
"이번주 빌보드 탑 트웬~티! 자~ 자~일등부터 이십등까지 다있어! 일단 한번 골라봐! 자~ 자~ 이번주 일위곡
렛츠고크레이지(Let's Go Crazy! : 프린스 노래 '84년곡) 자~ 자~ 금지곡이죠. 자~ 자~ 여기 다 들어있어!
일단 한번 들어봐. 웬더브스크라이(When doves Cry), 퍼플레인(Purple Rain) 자~ 자~ 다 일위곡이야!~"
일단 한번 들어보라고 그랬지만, 리어카 위에 턴테이블이 있을리 만무하기에, 좋은 놈을 고르기 위해서는
푸르죽죽하고 얇디얇은 조악한 재킷을 벗기고 유심히 LP판을 들여다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판이 휘어져 있으면, 텅텅 튀기때문에 평평하게 잘 펴져있는지가 관건이고, 테두리의 매끈한 정도와
빽판의 무게 (그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판이 더 좋다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있었다...)를 유심히
견주어 힘겹게 골라내면, 그때까지 유심히 바라보던 백판 장수 아저씨는
"어~ 학생 수준있네, 이거 요새 정말 잘나가. 잘 고른거야~ 근데, 이거 사는 사람들이 요것도 같이 사더만..."
하며, 슬쩍 추천 앨범을 올려 놓는 장사 수완을 발휘 하곤 했다.
(요즘 인터넷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이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추천하는 책] 마케팅의 원조 아닌가!!)
지금 돌이켜 보면, 불법음원의 유통 온상지로 대변되었던 청계천상가 였지만,
듣고 싶은 노래가 금지곡이 되 버렸던 우울한 5공 시대에 유일한 해우소 역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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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나를 80년대 청계천 키드의 추억으로 몰고간 그 원인은...바로
선릉역 근처에 [7th Wave]라는 테이크아웃 카페를 차렸다는 초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고 나서 이다.
7th Wave 이거 많이 듣던 건데...어디서 들었지?...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80년대 '폴리스'라는 그룹으로 활약하다 독립한 '스팅'의 데뷔앨범에 있던 'Love is the 7th Wave'란 곡이
떠올랐다. 그 당시 유행하던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공을 들여서 호응이 좋았던 그 곡. 다른 금지곡 때문에
백판을 사고, 너무 좋아서 판이 튀길때 까지 들었던 그 곡에 7th Wave 라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스팅은 왜 사랑은 7번째 파도 라고 했을까? 왜? 궁금하다....
(위의 추측은 순 내 생각이니, 내일 점심때 만나서 물어봐야겠다.ㅋ)
○ 스팅의 데뷔앨범에 금지곡의 웃기는 사연이 궁금하시면 이쪽에~
○ 스팅의 'Love is the 7th Wave' 뮤직비디오는 이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