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 <1965. 11. 4>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우습지 않느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수영 시인은 나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풀'의 작가 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시험에 나오는 그 '풀'의 의미를 파악하는 정도로 그친 '공부'로서의 작가 였다.

그가 살아서 꿈틀거리며, 내 머리속을 "쾅" 하고 내리친 것은 다름아닌,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위의 시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중한 기억과 만남의 인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서 우리는 그사람을 추억하고, 또 기억하며 그렇게 그사람을 내 머리속에 새긴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레코드점에 붙어있는 이름모를 팝송 LP판들이 어는 순간 내가 '이제' 알게 되어서

미치도록 빠져 버렸던 그 앨범인 것을 뒤늦게 깨닫고, 블쑥 들어가 그걸 붙여놓은 멋진 주인장과

대화하는 그런 감동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없다.

40년도 더 전에 그는 없다.

나는 그의 시를 하나씩, 하나씩 읽어본다.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늦게라도 몇자 젂어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Posted by 도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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